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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는 멀리 부소산을, 동쪽으로는 금성산을 그리고 서쪽으로는 들을 건너 백마강이 흐른다.

백제 때는 궁성의 외곽지로 그리고 현재는 부여군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동남리다. 

백제 때의 그 유명한 정림사가 있으며 궁남지도 동남리안에 있다.







동남리에서 왕포리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쭉 가다보면 왼쪽으로 가면 논산방향이고, 오른쪽은 보령방향으로 가는 도로가 나온다.

동남리의 맨 끝으로 시내권의 맨 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동남리는 동산과 남산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는데, 부여군에 편입되었다가 그 후 면명 개칭에 따라 부여면 동남리가 되었다.

백제 멸망 후 백제의 옛 문화는 황폐화 되었으나 들에는 농경지가 생김에 따라 완전한 농경지대로 변모한 지역이기도 하다.







동남리를 대표하는 동남아파트 길목이다. 

오래된 아파트라서 그런지 노인분들이 많이 거주 하신다. 

동남리에서 가장 오래된 씨족은 하동정씨이다. 

이 길을 따라  쭉 직진하면 그 유명한 궁남지의 입구가 나온다.

궁남지 근처로 맛집과 카페들이 즐비해 있다.





이 길목도 동남아파트 입구 길목인데 

이 길을 따라 가면 국립부여박물관이 나온다.

동남리는 동서남북 어느쪽으로 가도 

부여의 유적지와 중요한 행정기관을 

가깝게 걸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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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암면 백마강앞에 마을이 있는데, 그곳이 호암리이다. 백제 때는 사비군에 속했으나 신라 때는 부여군에 속했었다.

여기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백제 멸망 후로 추정을 하고있다. 이전에는 백제가 부여에 천도한 후 

천정대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 정도 였다. 사실 신라 때부터 부락의 형성 증거가 있으나

금강변의 잦은 범람과 지형의 변화로 정착민이 뿌리를 내린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호암리라는 지명에서도 알수있듯이 호랑이와 관련이 있다. 

조선 시대 말기에 부여군 도성면의 지역으로서 뒷산에 범바위가 있으므로 범바위 또는 호암이라 하였다. 

이곳 호암리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이 몇군데 있다.

호암사지와 천정대가 바로 그곳이다. 

천정대는 백제시대 정승을 뽑는 제도인 정사암제도를 했던 곳이다.

이 바위 근처에 와서 후보자 3~4명을 지목하여 성명을 써서 함에 봉하고 이 바위 위에 놓고 얼마 있다가

그 함을 뜯어보면 도장이 찍힌 사람을 정승을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천정대의 또다른 이름은 정사암이다. 





왕이 친히 이곳까지 와서 백제의 정사를 

하늘에서 지적해 주는 정승으로 하여금 보게 한 그 선택의 장소, 천정대가 있고

유서깊은 사찰의 터가 남아있는 호암리는 

굽이굽이 능선을 따라 올라가게 형성이 되어있다.

호암리 마을회관 바로 앞에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이곳은 그 유명한 호암사지 이다. 호암사지는 천정대와 함께 삼국유사에도 기록되어있으며 

현재 호암사의 중심을 이루었던 지역은 대부분 민가가 들어섰다. 옛 모습을 정확히

추측할 수는 없으나 당시의 큰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백제 때 창건으로 충청남도 지정기념물 제 32호에 지정된 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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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내산면 금지리에는 진일포라는 조그만 개포가 있다

이 개포는 금지리에서 발원하여 금강으로 흐른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지만 백제시대에는 제법 흥하던 포구였다

더구나 백제때 물고기 하면 진일포를 지적할 만큼 물고기가 많이 나왔고

그중 천하의 진미라 불리던 가물치는 진일포 가물치를 제일로 쳤었다

많은 낚시꾼들이 진일포에 몰린 이유이다

그때 진일포 가물치들은 하루에 몇 백마리씩 인간에게 잡혔다

이와 관련된 진일포 가물치 전설이 하나 있는데, 이야기가 흥미롭다






 하루는 가물치들이 모여서 가물치 왕을 모시고 회의를 했다

그들은 흥분하며 왕에게 말했다. “우리가 우리먹이를 찾아 따먹다 보면 사람에게 잡힙니다! 

이말을 들은 가물치왕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래서 첫날 모임에 다른 가물치들에게 알렸다

“우리 진일포 가물치들은 맛있는 음식이 물 속에 둥둥 떠 있어도 먹지말 것! 

맛있는 먹이를 먹지말라는 왕명이 내려졌으나 다른 가물치들은 피래미새끼나 붕어새끼 보다는 

강물에 둥둥 떠 있는 그것이 더 맛있으니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왕명을 무시하고 그 먹이를 따먹다가 육지로 잡혀가기 일쑤였다

가물치 왕은 또 회의를 소집했다. “짐이 따 먹지 말라는 음식을 왜들 따먹느냐그렇게 호의호식을 하고 싶으냐

그 음식을 따 먹다가 살아남은 놈 있느냐? 그는 서슬이 퍼래진채로 다른 가물치들을 나무랐다

그 때였다어떤 가물치 하나가 선뜻 앞으로 나오더니 가물치왕에게 말했다

“왕이시여그렇게 호령만 하지 마시고 그 강물에 둥둥 떠있는 

음식보다 맛있는 음식을 구해다가 우리들에게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자 모였던 가물치들은 모두 그렇다고 호응하는 것이었다




 

.가물치 왕은 고민끝에 사람으로 변하여 육지에 나가 

가물치를 잡아가는 그 맛있는 먹이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왜 가물치들을 잡아가는지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가물치왕은 사람으로 변하여 육지로 나왔다

그는 제일 처음 사람이 많은 시장으로 갔다

시장의 사람들은 모두 다 가물치를 최고의 물고기라 칭했다.

 “하기야 생선회하면 가물치지 안그래요게 말이야 처먹는 것이 

고급이거든 그러니 회가 맛이 있을 수밖에...

그놈을 잡아다가 뚝 잘라서 양념에 찍어서 먹는 맛은 천하제일이지!

가물치왕은 시장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오히려 자부심을 갖게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고급으로 치는 쇠고기를 먹이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 때부터 물가에 매달아 놓은 소는 모조리 잡아서 강물에 던졌다

쇠고기를 먹기 시작한 후부터 가물치는 낚시꾼에게 잡히지 않았다.




가물치들은 우리왕이 최고라고 칭찬했다그러나 강가에 소를 메어 놓은 것이 없어지면서부터 

사람들은 소를 더 먼곳에 메어놓았다가물치왕은 먼곳까지 소를 잡으러가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들키게 되었고붙잡히고 모든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털어놓게 되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이 곳에 모여 들었다

그동안 쇠고기만 먹었기에 잡히는 가물치는 살이 포동포동 올랐고 

이 때부터 잡히는 가물치는 더울 잘 팔렸다

사람들은 진일포 근처에 집을 짓고 하루종일 낚시를 했다

그래도 고기가 모자랄 정도였다이전보다 더 많은 가물치들이 사람에게 잡혔고 

가물치 왕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애석해하다가 홧병으로 죽었다.

이 곳은 하루종일 몇날 며칠을 두고 낚시질을 해도 

고기가 잡힌다고 하여 진일포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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