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부여공감



 부여시장 청년몰 2층에 자리한 파스타가게 ‘다시 봄’. 이곳은 부부가 알콩달콩 운영하는 작은 가게다. 이곳의 안방마님 정헌주 씨는 부여가 고향인 남편을 따라 2014년 이곳에 왔다. 부여에 오기 전 헌주 씨는 인천과 서울지역에서 12년 동안 외식업계에 종사하며 탄탄한 실력을 쌓았던 전문가로 일했다. 실제로 현재 ‘다시, 봄’에서 맛볼 수 있는 요리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소스도 직접 제조하고 있다. 


 젓갈가게를 하는 시부모님의 일을 남편과 함께 도왔지만, 헌주 씨는 부여에 정착한 청년으로서 본인의 장점을 살린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겪다 보니 경력이 단절되는 것이 아까웠어요.”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청년몰이라는 공간을 알게 돼 이것저것 서류를 준비하며 가게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군청에서 실시하는 청년몰입점자 면접도 최고점수로 합격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준비한 ‘다시, 봄’이 문을 연지 벌써 1년이 다 돼 간다. 그간 12년 동안 갈고 닦았던 실력을 발휘하며 성실하게 일했다. 기본적인 재료준비부터 소스, 피클 등을 손수 준비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믿고 꾸준히 찾아주는 단골들도 많이 생겨났다. 



 ‘다시, 봄’이라는 가게 이름은 정헌주씨 부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녀를 출산했지만, 아이가 많이 아팠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의학의 힘을 빌렸지만 아이는 부부의 곁을 떠나 하늘의 천사가 됐다. 아이를 보내기까지 헌주 씨 부부는 말 그대로 ‘얼어붙은 겨울’과도 같은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야 했다. 이 가게는 그토록 추운 겨울을 보낸 헌주 씨에게 부부에게, 이를 모를 누군가에게 언제나 ‘다시,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헌주 씨는 이곳이 단순히 파스타를 만들어 파는 곳이 아니라 좀 더 특별한 곳이 되기를 희망한다. 헌주씨가 힘든시간들을 견뎌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처럼,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봄’ 같은 공간이 되는 것이 그녀의 큰 바람이다.



“최종적인 목표는 농가맛집을 만드는 거예요. 내 아이가 아파서 하늘로 간 것처럼 아픈 아이들을 위한 건강한 재료로 요리를 하고, 그 가족들 혼자만의 싸움이 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 함께 이겨내는 거죠. 치유의 음식과 식문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다시 ‘봄’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믿어요.”


 그녀는 언젠가 부여의 깊은 마을에 자리를 잡고 텃밭을 가꾸며 ‘내 새끼에게 먹인다’는 마음으로 다양한 메뉴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꿈을 꾼다. 몇 년 전과 다르게 부여의 땅값이 올라서 좀 더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꼭 해내겠다’는 그녀는 매일같이 ‘내 새끼’에게 먹일 파스타를 정성스레 만들고 있다.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로 얻는 치유는 삶의 방식을 바꾸게 하죠. 부정적 관점들을 반대로만 생각해도 우린 함께 ‘다시, 봄’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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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의 드넓은 백마강변엔 ‘구드래조각공원’이 있다. 그 공원의 끝자락엔 고즈넉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의 100년의 시간을 품은 한옥이 있다. 


 한옥은 주인장인 ‘강남규’씨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곳을 새롭게 개조하며 은은한 커피향이 풍기는 한옥카페 ‘하품’으로 재탄생했다.


 강남규씨는 부여가 고향이지만 학업을 위해 타지로 떠났다. 이후 해외에서 무역업에 종사하며 이곳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했다. 


 그러던 그는 문득 ‘부여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하던 일을 접고 부여로 내려왔다.


“정말 그냥 부여로 오고 싶더라구요. 정말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이라는 말이 맞아요.”



 그런 그에게 100년의 시간을 지닌 한옥은 선물처럼 새로운 일터가 됐다. ‘ㅁ’ 자형의 한옥  건물 ‘하품’은 가운데 마당 자리에 보호수처럼 큰 단풍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이 단풍나무는 계절마다 변하는 색과 함께 큼지막한 그늘로 오가는 이들에게 휴식공간을 만들어주는 ‘하품’의 상징이 됐다.  


“여긴 어렸을 적부터 놀던 동네이면서, 지나간 시간을 담고 있어 저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이에요.”


 카페 곳곳엔 그림을 전공한 아내의 실력을 엿 볼 수 있는 그림들이 걸려있는데 이는 하품만의 이색적인 특징이다. 전통과 현대의 조합으로 조화로 다른 곳과 차별화를 두고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또한, ‘하품’는 안채와 별채를 갖고 있는데, 이 공간에 그의 어머니께서 직접 사용하셨던 오래된 자개장 등의 물건을 전시했다. 이외에도 그가 그린 그림이나 다양한 활동으로 갖게 된 소품들 등이 함께 있다. 손님들에겐 카페의 인테리어 ‘소품’이겠지만 그에겐 어릴 적 그가 가진 추억과 함께 지나온 시간들을 곱씹을 수 있는 시간이 이곳 ‘하품’에 더해진 것이다. 



“저는 이곳에서 부여만의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장점을 살려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요.”


 부여에 내려와 하품을 만들기까지의 시간 전, 그는 지역사회활동에 활발히 활동했던 사회운동가였다. 그는 이제 이곳에 정착을 하고 결혼을 했다. 자녀도 생겼다. 이에 소홀했던 부분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부여청년정책포럼 활동도 열심히 참석하며 앞으로의 희망에 또 한 발자국 다가서고 있다. 


“아이가 커가고 더불어 살아가야할 곳이 부여잖아요. 그러니까 지금보다 더 활기차고 더 행복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해야죠.” 


 ‘하품’에서 내일도 더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시간은 오늘도 가을 햇볕처럼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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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과거와 현재의 중간같은 공간이네요.
    마인드도 그렇고 센스도 그렇고 용기도 그렇고
    참 대단하신 분같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캄보디아에서 온 케아브쏘쿤테아 씨의 집은 매일이 바쁘고 매일이 별 것 없이 즐겁다. 그녀는 20144월 한국에 온 4년차 며느리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이상하게도 그녀를 만나기도 전부터 참 좋아했다. 사진만 보고도 어서 데려오라며 결혼식장도 미리 예약해 둘 정도로 그녀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안녕하세요밖에 할 줄 모르는 그녀가 한국에 와서 가장 의지 할 수 있는 것은 가족뿐이었다. 여든의 시어머니와 남편은 그런 그녀에게 큰 힘이 돼 줬다.

 

 “저는 이제 한국의 가족밖에 없잖아요. 100% 만족은 못한다하더라도 남편도, 시어머니도 잘해주니까 노력하는 게 마음으로부터 느껴져요.”


 그녀가 언어를 하게 되면서 가장 좋은 점은 가족들과의 대화다. 예전에는 남편과의 시간도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지가 않았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말들이 늘어나며 남편과의 대화가 많아지면서 그 시간이 달라졌다고 한다.

 

 “농사를 짓느라 바쁘긴 하지만 조금씩 데이트하는 시간도 가져요. 그냥 차에서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둘 다 먹는 것을 좋아해서 먹으러 다니기도 하고, 갑자기 바다가고 싶다하고 간 적도 있어요.”

 

 처음에 남편이 권하던 김치를 거절하던 그녀는 이제는 김치 없이는 밥을 못 먹어 한국인이 다 됐다는 소리마저 듣는다.

 

 “막내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에 대해 묻는 분들이 있지만, 캄보디아는 원래 막내가 모시기 때문에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오히려 저는 이제 시어머니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제가 이런저런 말씀을 드려도 다 받아들이시고 진짜 착하고 마음도 여리고 좋은 분이세요.”

 

 그녀는 김치 담그는 법부터 하나하나 여러 번 설명해주시고 아이도 봐주신다는 시어머니의 연세가 늘어가는 것이 무섭다. 시어머니는 최근 그녀에게 부엌살림을 넘겼다. 이제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드셨나보다.

 


 아이를 낳고 20일 정도 남편과 함께 캄보디아에 다녀왔던 때, 그녀의 남편은 유독 캄보디아 음식도 잘 먹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캄보디아 사람들도 신기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 모습이 그녀는 너무 고맙고 기뻤다.

 

 “다문화 가정의 남편들은 보통 아내 나라의 음식들은 잘 안 먹더라구요. 어떤 사람은 먹어보지도 않고 편견을 가져요. 근데 남편은 저의 나라도 사람도, 음식도 좋아하고 잘 맞아했어요. 김치만 있으면 뭐든지요.”

 

 그 모습이 어찌나 좋았던지 그녀는 캄보디아에서 겉절이, 오이김치 등을 했다. 남편이 잘 먹고 표현을 해주니 기쁜 마음으로 절로 해주게 됐다.

 


 그녀는 이 행복바이러스는 여기저기 알리기 위해 SNS 활동도 시작했다. ‘’SNS 부여사랑 해외홍보단활동을 통해 궁남지 연꽃축제나 백제문화제, 부여 소식이나 자신의 활동 등을 캄보디아어와 한국말로 함께 번역해 홍보하는 것이다. 활발한 활동을 통해 지난 4월에는 상도 받았다. , 다문화센터에서 처음으로 캄보디아팀이 만들어졌는데 여기서 대장을 맡아 공연도 열심히 했다



 그녀는 최근 통역사의 꿈을 꾸고 있다. 최근 같은 나라에서 온 이들이 회사에서 어려움을 겪어 그녀가 대신에 의사를 전달해 도움을 줬다. 통역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되는 이들인지라 언어에 어려움이 있어 그녀가 큰 도움이 됐다. 그들이 말하는 감사하다는 말에서 오는 좋은기분에서 그녀는 행복을 느꼈다.

 

 “한국에 왔을 때 남편이 김혜원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전 지금 예쁜 이름 그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아이가 예쁜 표현을 하는 것도. 가족과 행복 한 것도. 그래도 저는 혼자 잘 사는 것보다 다른 사람도 같이 잘 살고 행복한 게 좋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요.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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