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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절로도 으뜸, 곡부마을 가곡1리
    러블리타운 2018. 2. 20. 00:39

    박영희 장군의 생가터. 지금은 후손인 박병호씨 부부가 살고 있다.박영희 장군의 생가터. 지금은 후손인 박병호씨 부부가 살고 있다.

    생가의 처마와 기둥. 아주 오래된 당시 건축물임을 증명하고 있다.생가의 처마와 기둥. 아주 오래된 당시 건축물임을 증명하고 있다.

    옆에서 바라본 생가.옆에서 바라본 생가.

     

    가곡1리는 충절로도 으뜸이다. 그중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김좌진의 남자 박영희 장군의 생가가 아직도 남아 있다.

     

    박영희 장군은 조선 말기 좌승지를 지낸 박시순의 손자다. 박영희는 이곳 신명의숙 출신으로 휘문의숙에 진학하여 신학문을 배운 뒤, 신흥무관학교를 나왔다.

     

    박영희 장군. 그가 장군은 아니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으나, 이미 김좌진이 청산리 전투 이전에 사령관으로 장군직함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도 1925년 사령관직을 수행함에 따라 장군으로 칭송해야 타당하다. @사진출처 : 천안독립기념관 홈페이지박영희 장군. 그가 장군은 아니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으나, 이미 김좌진이 청산리 전투 이전에 사령관으로 장군직함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도 1925년 사령관직을 수행함에 따라 장군으로 칭송해야 타당하다. @사진출처 : 천안독립기념관 홈페이지

     

    북로군정서 학도단장을 맡았고, 1920년 여름 김좌진 장군의 부사령관으로 청산리 전투를 치른 독립군이다.

     

    그는 1925년 신민부 보안사령관을 지냈으나 5년 뒤인 러시아 고루지게에 독립군지원을 요청하러 갔다가 피살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영희 장군 생가에 있는 귀옹영당. 가정내에 영당이 있는 곳은 충청도에서도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한다.박영희 장군 생가에 있는 귀옹영당. 가정내에 영당이 있는 곳은 충청도에서도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한다.

    영당 안쪽 문.영당 안쪽 문.

    귀옹 영정. 귀옹 박경후의 영정이다. 현재는 가본이고, 진본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평상복을 입고, 가슴에 옥뱃지, 의자에 호랑이 가죽 등이 눈에 띈다. 귀옹 영정. 귀옹 박경후의 영정이다. 현재는 가본이고, 진본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평상복을 입고, 가슴에 옥뱃지, 의자에 호랑이 가죽 등이 눈에 띈다.

    박병호씨의 조부와 조모의 사진. 조선말기에서 일제강점기 사이에 촬영한 듯 보이는 자료다. 이 사진도 영당에 함께 모셔져 있다. 발 아래 작은 분재가 놓여진 것이 인상 깊다.박병호씨의 조부와 조모의 사진. 조선말기에서 일제강점기 사이에 촬영한 듯 보이는 자료다. 이 사진도 영당에 함께 모셔져 있다. 발 아래 작은 분재가 놓여진 것이 인상 깊다.

     

    박영희 장군의 생가에는 조상들의 영당이 있다. 조선 중기 문신인 박경후(朴慶後)의 영정이 있었던 곳이다. 현재 진본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귀옹 영당이라고도 불리는데 조선 후기 좌승지를 지낸 박영희 장군의 조부 박시순이 이곳에 자리를 잡으며 영당을 세운 듯 하다.

     

    시전, 서전, 논어, 주역, 맹자 등이라 써있는 함 안에는 고서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시전, 서전, 논어, 주역, 맹자 등이라 써있는 함 안에는 고서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 건물이 지어진 내력을 알 수 있다. 병술년 7월 15일 기사(?) 미시 입주상량이라고 쓰여 있다.이 건물이 지어진 내력을 알 수 있다. 병술년 7월 15일 기사(?) 미시 입주상량이라고 쓰여 있다.

     

     

    더욱 충절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은 이 집에 거주하는 박병호(67), 유희정(64)부부가 집안을 보존하고,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석성에서 살다가 장손의 집안에 시집와 40년을 살은 희정씨는 한 해에 열 두 번도 넘는 제사를 지금까지도 챙기는 효부다.

     

    시어머니가 시집살이를 하지 않으셨다고 해요. 그래서 종갓집인데도 정말 편히 살아왔어요.”

     

    종갓집 며느리 유희정씨. 입가에 미소가 그득하다. 종갓집 며느리 유희정씨. 입가에 미소가 그득하다.

     

    처음엔 아름다운 꽃밭과 서른 칸이 넘는 방을 가진 으리으리했던 집안에 시집와 지금까지 살았던 그는 힘들었을 법한 세월임에도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주춧돌에 집이 반듯이 서 있는 게 대견할 정도다. 어림잡아 100년도 훨씬 더 된 것 같은데 그저 지붕이나 바꿔고, 조금씩 현대식으로 바꿨는데 한옥의 틀은 단단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이가 이 집에 손을 대는 것을 참 싫어해요. 집이 북향이고, 문도 앞뒤로 나 있어서 얼마나 바람이 심했는지... 지금은 안에 보일러도 놓여 있지만 젊은 애들은 아직 불편하다고 하는데, 오래 살아서 그런지 이제는 불편한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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