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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석두 루카 성인의 시신이 안장된 [삽티성지]
    러블리백제 2018. 4. 27. 06:45


     


     

    황석두 루카 성인의 시신이 된, 삽티성지


     

     

    홍산을 여행하다보면 '삽티성지'를 만날 수 있다.

    삽티는 성인이 안장됐던 자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연풍에서 살던 성인의 가족이 이주해 신앙을 전파했던 곳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삽티성지 간판>

     

     

    한적한 도로를 가다보면 삽티성지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간판을 따라 오르막을 올라가다보면 십자가를 만날 수 있다.  

    삽티 계곡에는 1790년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았던 장소였다고 전한다.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선각자 이존창 알로이시오 공사가 선생이 고향 예산 여사울에서 배척 받은 후 홍산 지방으로 피신하였고, 이존창 선생의 비밀 선교화동에 의해 홍산 지방에서 천주교 신앙을 지니게 된 교우들이 숨어 살기 시작한 곳이 바로 이곳 삽티 계곡이다.  

     


    <삽티성지 십자가>

     

    1850년대에 충분 괴산 연풍에서 배척 받은 황석두 루카 성인은 가족들을 이곳 삽티에 이주시켰다.
    황석두 성인은 인근 30여리 상거의 산막골에 선교거점을 삼은 선교사 페롱 신부를 보필하고 삽티를 중심으로 인근 산골 교우촌들을 순회해 신자들을 지도했다.


    하지만, 결국 황석두 성인은 병인박해를 당해 1866년 3월 30일에 보령 갈매못에서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와 함께 순교했는데, 황석두 성인의 시신을 양자 황천일과 조카 황기원이 수습해 그해 5월 29일 이곳 삽티에 안장했지만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순교해 그동안 정확한 안장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황석두 성인의 시신이 삽티에 안장된 사실은 1922년 시복법정에서 성인의 종손녀 황 마르타가 증언하면서 확인됐다.

     

    "(병인년의) 4월 16일(양력 5월 29일)에 나의 백부가 가서 시신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홍산 사피(삽티)에 묻었습니다. 
    지금은 자손이 없
    기 때문에 가더라도 찾지 못합니다.
    (시복조사 1922년 재판 34회차 제23조목 황 마르타의 증언-정리번호220)"

     

     

    <삽티성지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성석당>


     

    그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삽티에 거주하며 옹기를 굽고 살던 신자들이 떠났고 교우촌은 사라졌다.
    1964년 5월 24일 산지 개발 작업 중 허물어진 무덤에서 성물들이 발굴되면서 2012년부터 천주교 대전교구는

    성물 발굴지점을 주임으로 성역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삽티성지 미사시간 안내판>

     

     

    현재 삽티성지는 지금은 성석당에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주일 미사는 매 일요일 오전 11시, 순례 미사는 미리 연락을 주면 원하는 시간에 연락전화는 010-4745-9625

    이쪽으로 연락을 주시 미사를 드릴 수 있다.

    또한 도앙골성지에서 삽티성지까지 3.5㎞ 도보순례도 가능하니 한 번 걸어보시는 것도 좋다.


    성인의 믿음과 삶이 뿌리내린 이곳의 삽티성지의 앞으로 개발이 큰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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