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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신을 알리고자 지어진 '의열사'
    러블리백제 2018. 9. 28. 01:33


     충신을 알리고자 지어진 '의열사'


    1984년 05월 17일 충남문화재자료 제114호로 지정된 의열사를 찾았다. 

    부여 의열사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3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1575년(선조 8년) 부여 현감이었던 홍가신이 
    백제 때 충신 성충과 흥수, 계백 고려 말기의 충신 이존오의 충의가 
    후세에 전해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 해 건립한 것이다.


    사우 입구에는 한벌대의 장대석 기단 위에 원형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운 후 굴도리 계통으로 처리한 

    소슬 삼문형의 외삼문이 세워져 있다.


    이 삼문을 들어서면 다시 6단의 계단으로 오르도록 한 둘째단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평면으로 구성된 사우가 건립되어 있다. 측면 3칸중 전면 1칸은 개방하여 전퇴로 만들었고 나머지 2칸은 통칸으로 하여 6인의 위패를 모시는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창호는 전면에만 각 칸에 4분합 띠살 들어열개를 달아 서까래에 달려 있는 걸쇠에 걸도록 했다.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는데, 건물의 규모가 크며, 주변 환경과도 비교적 잘 어울리고 또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사우 건물이다. 이 지붕은 옆에서 보았을때 사람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 모양이다.



    그 후, 1577년에 사액이 내려졌고, 1641년(인조 19년)과 1675년(숙종 1년)에 각각 중수됐다.


    이후엔 조선 선조 때 지사였던 정택뢰와 인조 때 문신인 황일호도 함께 배향 됐고,
    1866년(고종 3년)에 철폐됐다가 복원됐다.



    지금 건물은 용정리 망월산에 있던 것을 현재 위치한 남령공원으로 1971년 옮긴 것이다. 


    건축양식은 전면에는 창방 위에 다시 평방을 놓고 그 위에 내, 외 1출목으로 짜여진 주간포를 각 칸에 2구씩 배치하고 있는 다포양식이다. 


    앙설형으로 뻗은 초익공의 선단에는 연꽃이, 그리고 수설형으로 뻗은 2익공의 하단에는 연꽃 봉우리가 조각되어 있다.


    단청과 함께 건물 전체에 화려한 요소가 고려되어 있다. 또한 후면의 주칸에는 전면의 주간포 대신에 운궁이 결구되어 있는 장화반이 각 칸에 2구씩 배치되어 주심도리 장혀를 받고 있다.특히 전면에 있는 외목도리가 생략되어 특이하다.


    지붕틀은 전방 퇴주와 후방 평주사이에 내고주를 세우고 있는 1고주 6량집으로서 종량 상부에는 파련대공을 설치하여 종도리를 받고 있다.



    의열사비는 이간이 쓴 것으로 조선 경종 3년(1723)에 세워졌으며, 

    1971년에 마찬가지로 부여읍 용정리 망월산에서 아우와 함께 현 위치로 옮겨졌다.


    야산 중턱 남향에 위치하고 있는 이 의열사의 입구 좌측 1723년(경종 3)에 정호가 찬하고 

    이현지가 쓴 의열사비에 조선 1575년(선조 8)에 부여 현감인 홍가신에 의하여 의열사가 세워졌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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