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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운의 조상 왕신
    러블리인문학 2018. 12. 24. 19:30

    부여에서 '왕신'은 올바른 죽음을 겪지 못한 집안 내의 귀신이다. 때문에 흔히 조상이 되지 못한 귀신이라고 한다. 어떤 집안의 특수한 사정과 관련된 신이다. 

     왕신은 모시기가 매우 까다롭고 힘들다는 공통성을 지닌다고 한다. 기왕에 섬기려면 잘 해야지, 까닥 잘못하면 집안 식구 하나 죽어나가기 십상일 정도로 무섭다고 전해진다. 왕신단지를 장광에 모셨다면, 특별한 일이 없이 그 부근으로 가는 것조차 마음에 걸려하는 수준이다.

     집안에 왕신단지를 모셨다면, 다른 집안의 신령보다도 모든 일에 걸쳐 제일 먼저 신경을 써야 한다. 가령 집 바깥에서 조그만 물건이나 음식이라도 들어오면 먼저 왕신에게 바친 후 사용해야 한다. 집안에서 별식을 마련해도 그렇다. 

     집안에 새색시가 처음 들어와도 왕신에게 폐백을 드려야 하고, 사망 소식을 알리는 부고(訃告)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규칙을 깨면 왕신의 노여움은 걷잡을 수 없다고 전해진다. 

     왕신의 신체는 집안의 형편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보통 왕신은 장광 뒷쪽에 모신다. 

     세 갈래로 된 나뭇가지 위에 조그만 흰 단지를 올려두고, 춘추로 햇곡식이 나면 갈아넣으며 짚으로 유지지[유두지]를 만들어 비에 맞지 말라고 씌워 놓는다. 

     집안이 부유하면 쌀 한가마니 정도를 항아리에 넣기도 한다. 햇곡식이 나면 교환해 주는데, 이때 묵은 쌀은 함부로 버리지 않고 식구들이 반드시 먹어야 한다고 한다. 만약 가축이 조금이라도 먹었다가는 큰일이 난다.

     왕신에게 더욱 신경을 쓰려면 장광이 아니라 방 하나를 따로 마련하여 그곳에 신체를 봉안하고 모시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왕신단지에 옷감이나 옷, 돈 따위도 넣는다. 

     집안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왕신에게는 대개 매달 초사흗날이나 초이렛날에 떡을 해서 위한다. 물론 명절 때에는 제물을 제대로 갖추어 모시기도 한다. 이때 왕신단지의 유지지는 벗겨 놓아야 한다. 

     왕신을 어느 정도 모시다가 힘에 버거우면 새색시로 하여금 없애게 한다. 갓 시집온 새댁만이 왕신을 제어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새색시가 시집올 때 엉겁결에 왕신단지를 없애면, 왕신은 못살겠다고 하여 그냥 떠나버린다고 여겼다. 

     물론 왕신을 축출시킴으로써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있지만, 워낙 위하기가 어려워 그러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새색시가 들어올 때 없애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참고문헌:부여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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