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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지나가는 것들의 아름다움러블리부여인 2018. 1. 10. 01:34
구자운 씨와 오경희 씨는 대학 때부터 연애를 시작해 회사생활과 귀촌 생활 모두를 함께하고 있는 둘도 없는 단짝이다. 매일을 웃으며 맞이하는 그들은 황토방이자 낮잠카페로 알려진‘수리재’에 살고 있다.
수리재는 어느 계절에도 한껏 여유롭다. 닭들은 모이를 쪼고 강아지와 고양이들은 자유롭게 마당을 돌아다니며 느긋하게 낮잠을 즐긴다. 산양은 자신을 내다보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주느라 정작 밥에는 관심이 없다.
부부는 도시에서 회사생활을 하며 지냈다. 여느 맞벌이 부부가 그러하듯 어린아이를 두고 출퇴근을 하는 것은 언제나 편치 않은 일이었다. 경희 씨보다 조금 더 긴 회사생활을 한 자운 씨는 두통에 시달리는 일이 잦았다. 스트레스에 지친 몸의 혈압이 150~60대까지 올라가며 신호를 보내오던 것.
“돈과 인생을 맞바꾸고 사는 느낌에 참 슬펐어요. 귀촌을 결정하게 된 계기죠.”
부여로 이사를 오며 부부의 아이 또한 세도 중학교로 전학을 왔다. 도시의 학교와 다르게 전교생이 40명인 학교는 어디를 가더라도 한 차로 이동하는 그야말로 시골 학교 말이다. 때문에 1학년~3학년 중 모르는 이가 없고, 학교폭력으로 걱정할 일이 없는 이곳은 부부와 아이에게는 색다른 세계였다.
이렇게 누구보다 돈독한 모두에게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었던 부부는 학생들을 수리재에 불러 모아 1박 2일간 공간을 내어주고 캠프파이어를 준비하기도 했다. 전교생이 함께한 그 날의 파티는 어쩌면 어른이 됐을 때도 어김없이 되 새겨질 기억이 될 테다.
이런 수리재의 길가에는 버스가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부부는 3년간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이의 등하교를 책임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학원도 다니기 시작해 몇 번이고 운전대를 잡는다. ‘불편하지 않냐’는 물음에 이들은 웃으며 그저 ‘조금만 돌아가면 된다’고 말한다.
“아이와의 짧은 대화 시간도, 매연이나 소음 걱정도 없고, 요 앞의 등경수까지 깨끗하니 오히려 좋죠.”
부부는 양계장을 하는 이도 있고, 수박 농사를 짓는 이, 토마토를 재배하는 이 등등이 많은 이곳은 수확 철이 다가오면 ‘맛이라도 봐’라며 가져다주는 정이 있단다. 쏠쏠한 재미가 하나 둘 씩 늘어가고 있다. 사람과 관계와 정을 쌓는 재미에 이들은 삶과 여유의 ‘만족’을 얻는다.
“이곳에서는 나쁜 것, 안 좋은 것들이 눈에 잘 보이지 않아요. 제3자는 확연히 보일지 모르지만 저는 만족도나 행복도가 높아서인지 그런 것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아요.”
그 넉넉한 마음이 수리재의 황토방처럼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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