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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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사상가 ‘야산 이달’ - 下러블리인문학 2018. 3. 26. 23:25
난세의 사상가인 야산 이달(也山 李達). 그를 본 후손의 시각은 어떨까? 손주인 사단법인 한국홍역문화원 이응국 대표가 지난 2017년 2월, 야산 선생의 평전을 써냈다. 그는 야산 선생의 손주이면서 주역의 제자이기도 하다. 물론, 그는 야산 선생의 가르침을 직접 듣지 못했다. 다만, 현존 주역의 대가이며 야산 선생의 제자인 ‘대산 김석진’ 선생, 역사학자 이이화 등으로부터 가르침을 이어받았다. 그러면서 제자들이 모여 앉아 추억하던 스승 ‘야산’의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듣고 자랐다. 그리고, 여러 고증을 거쳐 조부의 일대기에 대해 서술했다. 대전의 한 작은 커피숍에서 만난 이응국 대표는 “야산 선생을 이야기하려면 주역을 한 번이라도 읽어야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야산 선생이 살아온 일화를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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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 인근에 ‘낙화생’을 심다-야산 中러블리인문학 2018. 3. 20. 00:14
야산 이달 선생은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던 해 봄에 피난민과 제자 등 일행들과 함께 부여읍으로 거쳐를 옮긴다. 그리고 지금의 정림사지 오층석탑 주변 구아리와 동남리 일대에 촌락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야산 선생은 일행들이 먹고 살 양식이 부족함에 깊은 고민을 했다. 그가 이 같은 고민을 한 것은 이 때만이 아닌 것이 드러난다. 용정3리 청마산성 아래 위치한 그의 묘소 입구에도 제자들이 세운 비석에 많은 이들을 구제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곳에는 전란 중에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하고, 생계를 잇게 해준 내용은 나와 있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일화는 기록되지 않았다. 지금은 백마강 주변에 땅콩을 찾아볼 수 없지만, 강 주변 백사장은 수박밭으로 변하기 전까진 땅콩이 자라던 곳이었다. 이 땅콩은 6.25전쟁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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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란, 부여에 그가 왔었다-야산上러블리인문학 2018. 3. 20. 00:10
금성산과 남영공원을 잇고 있는 계백문. 지맥잇기 사업으로 세워진 계백문 끝에 큰 거북이가 기단으로 있는 비석이 있다. 비석에는 ‘야산이달선생강역사적비(也山李達先生講易事績碑)’라고 쓰여져 있다. 난세의 사상가인 이달 선생의 공적비이다. 야산 선생은 조선 말인 1889년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치르고 난 몇 해 후인 1958년 생을 마치기까지 신화를 일군 ‘주역’의 대가다. 젊은 시절에는 세상을 떠돌며 미친 척을 하던 그는 ‘주역’ 뿐 아니라, ‘도교’와 ‘불교’, ‘제자백가’까지 섭렵했던 ‘도학’의 대가다. 경북 김천 출신인 그의 공덕비가 충남 부여에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은 후 야산 선생은 대둔산에 들어가 108명의 제자를 키웠다고 한다. 그리고 1948년 야산선생이 곧 전쟁이 벌어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