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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여에서는 기우제를 어떻게 지냈을까?
    러블리인문학 2018. 11. 25. 16:00

    기우제 축문(추양리) / 출처: 부여군지

     기우제는 가뭄이 계속되면서 농작물의 파종이나 성장에 해가 있을 때 비를 내리기를 기원하는 제다. 


     농업을 기반으로 생활하는 우리 나라에서는 기우제의 경우 세시풍속처럼 일정한 시기에 지내는 것이 아니라 가뭄이 계속될때 부정기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비가 내릴 때까지 반복적으로 지내는 제로 다른 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참여하는 이가 많을 수록 효험이 있다고 전해지며 다양한 형식을 갖는다. 


     부여지역에서는 기우제가 아닌 '비우제'로 부르기도 했다. 간혹 물제, 무제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비우제'라는 용어가 가장 많이 쓰여졌다고 전해진다. 


     이곳의 기우제는 마을의 여자들이 중심이 됐다. 집집마다 한 사람 이상의 여성이 참여해 인근 지역으로 물을 받으러 갔다. 대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는 강이나 샘, 못 등이나 풍수상 용에 관련된 장소를 이용한다.  


     여자들은 키나 빈 병, 솥뚜껑 등을 준비해 풍장을 선두로 해 물 받을 장소로 행진을 한다. 이를 '물 받으러 간다', '물 달러 간다'고 표현했다.  입에 백지를 물고 조용히 가는 마을도 있지만 대부분 풍장을 치며 시끌벅적하게 이동한다. 키나 솥뚜껑을 머리에 이거나 옷을 평소와 다르게 입는 등의 모습과 행동을 취한다. 


     때로 기우제의 효험을 높이려고 시장을 경유하기도 했다. 목적지에 이르면 먼저 메(제사 때 신위 앞에 놓는 밥)를 짓고 미역국을 끓여 간단한 제를 지내고, 바로 '날궂이'를 한다. 키로 물을 흔들거나 솥뚜껑을 쓴 채 춤을 추거나 하는 행위가 많을 수록 기우에 효능이 있다고 하기도 했다. 


     물을 받아 마을로 되돌아 올 때도 갈 때와 마찬가지로 진행된다. 마을로 돌아오면 받아온 물을 사립문 옆에 나란히 매달아두거나 대동새미나 우물에 부었다. 혹은 산제당이나 당수나무, 탑 등 마을의 신앙물 주변에 뿌리기도 했다. 마을에 따라 받아 온 물을 붓는 장소에서 다시 한 번 메와 미역국을 마련해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렇게 여자들를 필두로 지낸 기우제는 보통 삼일간 반복되지만 같은 장소는 효험이 없다고 하며 장소의 경우 반드시 달리했다. 보통 첫날은 가장 먼 곳으로, 다음날은 조금 가까운 곳, 마지막날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낸다. 이는 비가 먼곳에서부터 점차 가까운 곳으로 옮겨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 날에는 마을의 뒷산, 근처 명산이나 산제당에 마을의 남녀노소 모두 기우제를 지낸다. 산에 올라 받아 온 물을 주변에 뿌리고 간단한 제상으로 준비해 장작과 짚 등을 땔감으로 불을 놓는다. 가뭄이 계속되면 다시 삼일간의 기우제를 반복한다. 

     

    (참고문헌:부여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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