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송당마을이 중심을 이뤘던 ‘합송리’
    러블리타운 2017. 5. 22. 15:17


     부여군 규암 합송리는 마을은 도로가에서 넓은 평야를 끼고 새로 난 반대편 도로까지 나지막한 언덕에 형성돼 있다. 방위를 뜻하는 동부(東部), 서부(西部)도 있고, 송당(松堂)을 중심으로 송동(松東)과 송서(松西)도 있다. 또, 동네가 장구의 목처럼 생겨서 장구동이라 부르는 마을도 있고, 새터라는 지역도 있다.



     합송(合松)은 소나무가 많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소나무가 꽤 많은데, 나무의 수 보다는 높게 하늘로 뻗은 나무들이 동네에 여기저기 군데군데 모여 있다.


     오래된 미용실 담장 곁으로 넝쿨이 얼키설키 있고, 작은 도랑에 연탄재의 흔적이 가끔씩 눈에 띈다. 지금이야 지저분하다고 생각되지만, 옛 생활모습이라고 보면 향수다.







     마을입구를 들어서면 우측에 솔밭이 또 나타난다. 그 주변으로 오래된 집들이 있는데, 소나무 나이가 집들보다 더 먹은 듯 높게 뻗어있다. 입구에는 그런대로 근대화 물결에 신식 주택들이 몇 채 눈에 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즈음 지어진 양옥집도 있고, 콘크리트 벽돌로 담벼락을 쌓은 집도 더러 있다.



     의자 몇 개 놓인 공원에는 풀이 무릎만큼 자랐다. 누군가를 위한 송덕비 한 쌍이 눈에 띄는데 가시덤불이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겨 뒷면 내용은 보기도 쉽지 않다. 오래된 소나무가 햇살을 잘 가려주고, 평평하고 널찍해 돗자리 깔기 좋은 장소에 나지막한 둔덕까지 있어 쉬어가기에는 그만이어서 잘만 가꾸면 좋은 쉼터가 될 듯해 보였다. 


     마을길을 들어가면 옛 창고가 친근하다. 눈앞에 보이는 솔밭 뒤로는 ‘송은정(松隱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그리고 마을을 오랫동안 지켜온 사람들이 쉬고 있는 노인회관이 함께 있다.



     70세부터 90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이는 회관에는 화투가 한창이다. 계산하기 힘들어 껍데기 숫자만 세어 점수를 먹인다. 기껏 주머니에 오천 원을 챙기고 나머지는 천 원짜리 한 장씩 잃었을 뿐인데, 갖은 사람은 넉넉하고, 잃은 사람은 속상하다. 그래도 낙서돼 있는 돈이 한 달 넘게 그 자리에서 이 주머니와 저 주머니를 오가고도 사라질 줄 모른다.



     회관에는 어느 노인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1900년대 즈음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사진 속의 인물은 ‘노갑성’이라고 한다. 사재로 이 노인회관과 송은정을 지은 사람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초기에 교하 노씨(交河 盧氏)가 정착해 부락을 형성했다. 그래서 합송 주변 노화리에는 아직도 노씨 집성촌이 형성돼 있다. 경주김씨들과 연안차씨, 남양홍씨도 연달아 정착한 이곳은 부여현 송당면의 중심지였다. 송당면사무소가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는데,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혁 이전까지일 것으로 추측된다.


     90세 노인은 마을이 오래전 제사지내던 당집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이름이 송당이다.


    “일제시대만 해도 해마다 제사를 지냈어. 안 그러면 청년들이 너댓씩 죽어나간다고 혔지. 근데 해방되구 청년들이 ‘그런 미신이 어딨냐’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어. 청년들 죽어나간다더니 그렇진 않더라구.”




     노인회관 옆 솔밭을 돌면 모퉁이에 땅이 움푹 꺼진 곳이 당집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당집 앞으로는 상여가 지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가까운 길을 두고도 상여는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고 한다.


     “이 앞이 전부 갈대밭이었어. 그래서 시목리 사람들이 갈대를 베어다가 땔감으로 썼지. 시목리에 심은 나무가 크면 우리가 가서 나무를 해다가 쓰고 그랬어.”


     합송리는 평야는 저지대인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마을이 낮은 등성을 따라 형성돼 있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마을 코앞은 온통 바다로 변했다. 백마강물까지 함께 들이쳤으니 갈대밭이 있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읍내로 나가려는 도로변에는 꽤 많은 이들이 드나들었을 듯 보이는 버스정류장을 겸하던 구멍가게가 자리하고 있다. 


    사람이 많을 때는 논티장과 홍산장, 읍내를 나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이 공원 이곳저곳에 삼삼오오 떠들며 기다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은 아무것도 갖춰져 있지 않은 듯 누렁이만 함석집 안에서 지나는 사람을 보며 오줌만 지리고 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