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리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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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주산(主山) 금성산을 탐닉하다-②조왕사러블리타운 2018. 2. 27. 00:45
금성산 중턱에 자리한 절이 조왕사(朝王寺)이다. 조왕사는 거듭 발전해 나가는 절이다. 조왕사에 대웅전에는 시도유형문화재 제23호인 '금성산석불좌상'이 있다. 이 불상은 만지면 아들을 낳는데 영엄하다는 소문이 퍼져 민간신앙으로 추앙돼 오다가, 1919년 김병준이 불당을 지어 안치했다. 그 뒤에 정두영이 중수하고 조왕사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에 이 불상을 옮기다가 밑에서 금동불상이 발견돼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고 한다. 이 석불은 앉은 키가 1.27m이며 몸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다. 고려시대 화강암제 석불인데, 특이한 점은 가슴에 손을 모으고 있는 형상으로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잡고 있다. 설명에서는 자애롭고 지혜를 추구하는 지권인(智拳印)으로, 비로자나불의 특징이라고 한다. 또,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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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주산(主山) 금성산을 탐닉하다-①금성산러블리타운 2018. 2. 27. 00:09
부여읍 동남리와 쌍북리, 가탑리, 관북리의 중심에 서 있는 금성산. 부여의 부소산성이 주산(主山)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사실은 금성산이다. 금성산은 오산(烏山), 부산(浮山)과 함께 삼령산(三靈山) 중 하나다. 삼령산이라는 이유는 금성산과 오산, 부산에는 신령한 존재들 셋이 살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날아서 오갔다고 하는데, 사비백제 123년 동안 지켜준 이들이라고 하는 전설이 있다. 그 중에 금성산은 일산(日山)이라고 불렸는데, 황산벌에서 패한 계백이 이곳에서 마지막 결전을 치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지금 부소산에 있는 반월루(半月)가 금성산에 있었다는 반월성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보인다. 금성산은 10여년 전 지맥잇기 사업으로 계백문이 서 있는 계륵고개(보릿고개)에 큰 문과 흙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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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로도 으뜸, 곡부마을 가곡1리러블리타운 2018. 2. 20. 00:39
가곡1리는 충절로도 으뜸이다. 그중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김좌진의 남자 박영희 장군의 생가가 아직도 남아 있다. 박영희 장군은 조선 말기 좌승지를 지낸 박시순의 손자다. 박영희는 이곳 신명의숙 출신으로 휘문의숙에 진학하여 신학문을 배운 뒤, 신흥무관학교를 나왔다. 북로군정서 학도단장을 맡았고, 1920년 여름 김좌진 장군의 부사령관으로 청산리 전투를 치른 독립군이다. 그는 1925년 신민부 보안사령관을 지냈으나 5년 뒤인 러시아 고루지게에 독립군지원을 요청하러 갔다가 피살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영희 장군의 생가에는 조상들의 영당이 있다. 조선 중기 문신인 박경후(朴慶後)의 영정이 있었던 곳이다. 현재 진본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귀옹 영당이라고도 불리는데 조선 후기 좌승지를 지낸 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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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낙지, 교육의 요람 곡부 가곡1리러블리타운 2018. 2. 20. 00:07
부여 은산면 가곡1리. 초입에 ‘곡부마을’이라는 초석이 마을 방향을 가리킨다. 가곡리는 크게 가곡과 고부실, 아가벌로 나뉘고, 1리는 고부실이라 불린다. 고부실은 초막동, 아랫뜸, 아랫고부실, 참나무쟁이, 채빙골, 꼭두마리, 가안고개 등의 지명이 전해져 온다. 이 마을은 풍수지리 책인 만산도비기(萬山圖祕記)에 ‘곡부(曲阜)에 매화낙지(梅花落地)형 양택 명당이 있다’며 ‘백자천손(百子千孫) 명공거경(名公巨卿)이 대대로 삼성팔현(三聖八賢)이 나올 자리’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또, 정감록에도 이곳을 십승지지(十勝之地 梅花落地)로 기록돼 있다고 한다. 실제로 남쪽에서 북향하는 매화봉 줄기가 마을을 양 팔로 감싸 안고 있는 지형을 가졌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은 근대 이전에도 많은 인물이 났다고 한다. 이 마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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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전설, 저석리 정월대보름 산신제러블리타운 2018. 2. 12. 23:32
저석3리는 오래된 산신제로도 유명하다.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자정부터 새벽까지 산신제가 지내진다. 많은 이들이 함께 할 수 없는 야심한 시각이지만 마을 주민들은 이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열성을 다한다. 마을에서는 매년 산신제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을 회의에서 뽑는다. 이를 당주라고 한다. 당주는 마을회관에 들어가면 14일 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못한다. 당주라는 것 자체가 산신당을 지키는 사람으로 아주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있고, 산신제 음식에 부정을 없애기 위해서다. 음력 정월 초하루가 되면 당주 둘이 마을회관으로 들어가고 이내, 문 앞에는 금(禁)줄이 걸린다. 부정한 것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다. 이렇게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조라술도 담고 음식도 준비한다. 다른 마을사람들은 제관도 선출하고, 풍물도 준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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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의 남자, 추포 황신 기리는 저석3리 창강서원러블리타운 2018. 2. 12. 23:24
이 마을은 지금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강 쪽과 산 쪽으로 두 마을이 갈라져 있다. 그래서 왕지는 산 쪽이고, 서원은 강 쪽 마을이라고 오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서원은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끝까지 모셨던 위성공신인 추포(호:秋浦) 황신(黃愼)을 기리는 곳이다. 황신은 부여 출생은 아닌 듯 하나 오성과 한음의 한음 이덕형과 함께 진주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오기 전에 약 2년 여 간을 부여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서원은 황신이 죽은지 12년 뒤인 1629년(인조7년)에 그의 뜻을 기리고자 건립됐고, 여기에 제향됐다.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은 그는 임진왜란 당시 변방의 백성들을 위로하는 방법을 진달해 절충장군이 됐다고 전해진다. 상급관청에 올리던 공물인 진달하는 방법으로 위기에 백성을 잘 돌봤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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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창했던 왕진나루, 왕진장터 부여읍 저석3리러블리타운 2018. 2. 12. 23:07
부여읍에서 공주방향으로 8km쯤 가다보면 경계에 저석3리가 있다. 백제보에서도 3~4km쯤 거리에 있는 곳으로 부여에서는 상류지역이다. 저석3리는 ‘왕지’라 불린다. 원래는 ‘왕진’이라고 불렸다. 왕진나루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나루터는 근방에서 가장 컸다고 한다. 그만큼 5일장도 장이 컸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왕지장터는 1940년대까지 아주 컸던 곳이라 한다. 공주와 청양의 경계이고, 청양과 맞닿아 건널 수 있는 부여읍내에선 가장 가까운 뱃길이다. 나루터는 1930년대 이전까지 뱃길을 이용해 강경을 드나들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1990년대 말까지 이 동네는 민물고기 매운탕이 유명했다. 내수면어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그 시절까지 이 강에서 나오는 민물고기를 잡아 손님을 맞던 매운탕 집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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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캐릭터로 치장한 임천 구교2리러블리타운 2018. 2. 6. 00:41
● 벽화. 토토로 캐릭터가 벽면을 채우고 있다. 부여군 임천면 구교2리는 임천중학교 맞은 편에 자리한 아담한 동네다. 주민은 고작 70여명 정도로, 40대 이하는 단 한 명 밖에 없는 고령화농촌마을이다. 이 마을의 풍광은 새롭다. 유명만화캐틱터들이 벽면을 채우고 발길을 붙잡고 있어서다. ●마을 입구에 있는 공동 우물이다. ●누구네의 담벼락 풍경이다. 깨끗한 색조로 공공디자인을 잘 살렸다. ●고양이가 쥐를 노리는 모습이다. 컬러감이 애니메이션 느낌으로 강하게 다가온다. ●짱구네 식구들과 친구들이 담벼락을 타고 놀러가고 있다. ● 시골 담벼락이라고 하기엔 너무 컬러가 화사하다. 겨울도 이 담벼락 앞에선 따뜻한 봄날이다. 벽화들은 지난해 7월 한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소속 학생들 80명의 손길로 이뤄졌다.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