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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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4개 향교는 어디일까?러블리인문학 2018. 11. 25. 13:56
향교는 고려와 조선에 있었던 지금으로 말하면 지방의 학교라 할 수 있다. 서기 1127년(인종 5)에 지방 제주에 학(學)을 세워 널리 도(道)를 가르치라는 왕의 명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고을의 규모에 따라 학생 정원이 다르고, 기본 재원에 따라 학전(學田)이 지급됐다. 또한, 수령은 향교 생도의 독서와 일과를 매월 관찰사에 보고했으며, 수령의 치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 향학(鄕學) 진흥에 큰 비중을 두었다. 후일 향교는 제사의 기능이 강화된 반면 교학의 기능은 약화돼 서원 발흥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조선시대 부여지방에는 임천군을 비롯하여 부여·홍산·석성의 네 개의 군현이 설치돼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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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면 마을의 유래러블리인문학 2018. 11. 16. 18:06
천보리(天寶里) 천보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피난처로, 광산김씨와 평산신씨 등이 이주하여 설촌하였다고 전해진다. 본래 홍산현 대야면의 지역이었다가 1914년 군폐합에 따라 신기리·늑동리와 무량리 일부를 병합해 내산면에 편입됐다. 이후 천보산의 이름을 따서 천보리라 명해 현재에 이르렀다. 그후 상륵·하륵·신기의 3개 마을로 구분됐다. 상륵마을은 지세가 말이 굴레를 벗는 형국이라 해 상륵이라 하고, 하륵마을과 함께 늑동리로 변했다가 천보리로 편입돼 현재에 이른다. 마을 뒷산에 반개절이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약 100여년 전에 없어졌다는 절터가 있다. 하륵마을은 아랫구레울이라 하여 하륵이라 칭했다. 마을입구에 소류지가 있어 10여 ha의 경지에 몽리하고 있다. 신기마을은 새로이 촌락을 이루었다 해서 옛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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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자식들 버릇 가르친 외산 갈산리 고갈마을러블리타운 2018. 11. 8. 21:17
가을 단풍이 울긋불긋이다. 입동이 지났지만 따스한 빗물이 잎사귀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내는지 색이 제법 나오고 있다. 구부정한 길을 이리저리 내달리다 내산 지티고개를 넘어 외산면 경계에 들어서면 우측으로 쿵쾅대며 공사가 한창이다. 제법 반듯한 길을 내고 있었는데 금지사가 있는 고개 옆으로 부여와 보령을 잇는 국도 확포장 공사다. 이 길이 나면 부여와 보령을 오가는 시간은 지금보단 훨씬 단축된다. 그리고 구룡에서 외산으로 오는 구부정한 길은 지금보다 더 한적해질 것이다. 고갈마을 입구에 설치된 도로 지지구조물이다. 그 뒤로 지티고개가 푸른 머리에 울긋불긋한 수염을 드러내고 있다. 외산면 경계 이 곳에 첫 관문은 닿는 갈산리이다. 움푹패인 곳에 자리한 마을인 안골, 도로 가장자리인 반교천을 맞대고 있는 안터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