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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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 금공리 '장승제'러블리인문학 2018. 11. 29. 17:00
은산면 금공리에는 예로부터 산제와 벼락바우제, 장승제, 서낭제, 둥구나무제 등 다양한 마을의 공동제사가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지나면서 다른 제의는 없어지고 산제와 장승제만 이어지고 있다. 이중 장승제는 산제를 지낸 후에 이어지는 제다. 예전에는 산제를 지내고 벼락바우제를 지낸 후 장승제를 지냈다. 벼락바우제는 마을의 한가운데에 있는 벼락바우에 들어가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원래 장승제는 새벽에 진행됐지만, 벼락바우제가 소멸되면서 산제가 끝난 자정무렵 곧바로 지낸다. 예전에는 음력 정월 초하루나 초 이튿날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인근에 장승나무를 베러 갔다. 그러나 현재는 장승제 당일인 음력 정월 초 사흗날에 장승목을 베러간다고 한다. 이 때는 반드시 손 없는 곳으로 가서 소나무와 참나루를 각각 한그루 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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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이 많이 날아들었던 은산면 금공리러블리타운 2018. 3. 13. 19:24
금강 지천이 시원하게 흐르는 부여 은산면 금공리. 동쪽으로는 큰 지천이, 북쪽과 서쪽, 남쪽으로는 산이 휘돌아 감아내듯 마을을 품고 있다. 마을은 매화낙지의 맥인 가곡리와 한 산을 함께 등지고 쓰는 금공리는 북동쪽부터 서쪽까지 금강안, 안뜸, 오릉거리, 청들, 새터, 안대울, 귓골 마을이 들어서 있다. 금강안은 금강이라고 불리는데, 안뜸에서 지천을 따라 올라가면 금강사지(金剛寺址) 발굴터가 나와 이렇게 불리고 있다. 지도에서 길이 끝나기 전 좌측에 이동식 화장실이 보이는데, 그곳이 금강사지다. 사적 제435호인 금강사지는 백제시대 절터다. 문헌에서 이 절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지 않아 이름을 알지 못했었다. 1964년부터 2년 동안 두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금강사라는 글씨가 찍힌 기와 조각이 나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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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낙지, 교육의 요람 곡부 가곡1리러블리타운 2018. 2. 20. 00:07
부여 은산면 가곡1리. 초입에 ‘곡부마을’이라는 초석이 마을 방향을 가리킨다. 가곡리는 크게 가곡과 고부실, 아가벌로 나뉘고, 1리는 고부실이라 불린다. 고부실은 초막동, 아랫뜸, 아랫고부실, 참나무쟁이, 채빙골, 꼭두마리, 가안고개 등의 지명이 전해져 온다. 이 마을은 풍수지리 책인 만산도비기(萬山圖祕記)에 ‘곡부(曲阜)에 매화낙지(梅花落地)형 양택 명당이 있다’며 ‘백자천손(百子千孫) 명공거경(名公巨卿)이 대대로 삼성팔현(三聖八賢)이 나올 자리’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또, 정감록에도 이곳을 십승지지(十勝之地 梅花落地)로 기록돼 있다고 한다. 실제로 남쪽에서 북향하는 매화봉 줄기가 마을을 양 팔로 감싸 안고 있는 지형을 가졌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은 근대 이전에도 많은 인물이 났다고 한다. 이 마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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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에 있는 부르주아 '세이재'러블리부여인 2017. 7. 19. 04:08
세이재는 은산면 거전리 움푹 패인 지천 옆에 자리하고 있다. 잘 보이지도 않는 곳인데, 그 정원에 올라서야만 가치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주인과 궁합이 맞는 사람들이 특히나 오래 찾는다는 ‘세이재’는 아기자기한 꽃과 나무들이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주인 부부가 직접 지은 세이재에는 이들 부부의 마음과 정, 흘러온 세월,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인연들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세이재 부부 이야기 부부는 툭하면 싸우는 게 일이란다. 입버릇처럼 서로에 대해 얘기한다. 누가 들으면 정말 불화가 끊이지 않는 가정인 줄 착각할지도 모른다. ‘세이재’ 부부를 지켜보면 ‘진정한 친구’라는 의미가 떠오른다. 퉁명스러운 듯 하지만 애교 있는 행복 가득한 부인 김영희(58) 씨와 묵묵하면서도 미소가 떠나지 않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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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인생박물관 ‘아빠학교 엄마교실’ 박종선 관장러블리부여인 2017. 6. 14. 12:07
부여군 은산면 한적한 도로가에 자리한 아빠학교 엄마교실은 폐교된 대양초등학교를 박종선 관장이 하나하나 손으로 가꾼 박물관이다. ‘은산면에 대양초등학교?’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으나 이곳은 예전에는 글자 그대로 ‘햇볕이 잘 드는 곳’이라는 뜻으로 ‘대양리’라 불렸다. 행정구역의 합병·개편을 통해 지금은 은산면이 됐다. 박종선 관장은 일생을 교단에서 보내다가 임천 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마무리를 했다. 이후에도 함께 식구와 함께 염색을 하고 서각을 하며 학교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었다. 이에 대양초등학교 폐교 이후 형님과 함께 좋은 마음으로 아버지가 집에서 쓰던 가구나 물려받은 것들 등 이것저것 보관하지 않으면 없어질 것들을 모으기 시작하며 박물관으로 가꾸게 됐다. 거창하게 언제 개관식을 하고 누구를 초대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