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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촌에 있는 부르주아 '세이재'
    러블리부여인 2017. 7. 19. 04:08



    세이재는 은산면 거전리 움푹 패인 지천 옆에 자리하고 있다. 잘 보이지도 않는 곳인데, 그 정원에 올라서야만 가치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주인과 궁합이 맞는 사람들이 특히나 오래 찾는다는 ‘세이재’는 아기자기한 꽃과 나무들이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주인 부부가 직접 지은 세이재에는 이들 부부의 마음과 정, 흘러온 세월,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인연들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세이재 부부 이야기


    부부는 툭하면 싸우는 게 일이란다. 입버릇처럼 서로에 대해 얘기한다. 누가 들으면 정말 불화가 끊이지 않는 가정인 줄 착각할지도 모른다.


    ‘세이재’ 부부를 지켜보면 ‘진정한 친구’라는 의미가 떠오른다. 퉁명스러운 듯 하지만 애교 있는 행복 가득한 부인 김영희(58) 씨와 묵묵하면서도 미소가 떠나지 않는 턱수염이 복스러운 남편 김광환(65) 씨는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다.




    영희 씨는 그들의 전원생활에 대해 남들이 흔히 말하는 산 좋고 물 좋은 고향이 그리워 정착한 예쁘거나 큰 뜻이나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그저 ‘도시의 부적응자’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언뜻 보아도 키가 크고 몸집이 좋은 광환 씨는 수시로 듣는 ‘젊었을 적에 운동 좀 했어요?’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소싯적 정말 코트를 누비던 대기업 농구 선수였다. 선수 생활 이후 사촌동생의 소개로 영희 씨를 소개받아 시작된 연애는 현재의 세이재까지 이어졌다.   


    광환 씨는 14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 홀로 남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영희씨와 아이들을 두고 부여로 돌아왔지만 얼마 가지 못해 일찍 돌아가셨다. 그러면서 부모님이 은산 거전리에 물려준 땅 위에 홀로 세이재를 세우고 영희씨를 불러들였다. 




    광환씨도 한 때 영희씨의 속을 태웠다. 마을에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부터 마을 일을 나서서 하고 다녔다. 직원도 없는 세이재에 부인만 홀로 두고 자리를 비우길 수차례 비웠다. 눈치를 봐가면서 마을 일에 뛰어다녔지만 ‘존재의 이유’를 위해 서로를 존중했다. 


    이들 부부의 두 번째 시련은 세이재를 차린지 4년 만에 일어났다. 광환 씨가 정월초하루 세이재를 잠시 비운 사이 모두 불에 타버렸다. 그리고 영희 씨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흙바닥을 깨끗하게 밀어내는 포크레인을 바라보면서 문득 누군가 해준 얘기가 떠올랐다. ‘바닥을 치면하고 싶었던 것이 떠올라.’ 참 아이러니하게도 화마가 모든 것을 앗아 갔는데도 가마로 도자를 빚고, 굽고 싶었다. 예전부터 속에만 갖고 있던 꿈이 계기가 돼 ‘다시’, ‘다른 것’, ‘꿈’ 이라는 게 생겨난 것이다. 




    영희 씨는 그때부터 도자에 빠졌다. 무작정 광환 씨에게 천막을 쳐달라고 부탁한 뒤 도자를 빚기 시작했다. 광환 씨는 어디까지나 취미로만 용납하겠다고 했지만, 영희 씨는 이것마저 못하게 하면 아무 의미 없이 사는 여자가 될 것 같았다. 이에 다른데 쓰는 것을 아끼겠다며 수소문을 해 알아낸 대전의 교수를 찾아가 도자를 배워 결국 도예가가 됐다. 

    바쁜 여름에는 매일 같이 작업을 하지 못하지만 겨울이나 작업이 잘 되는 날은 밤샘을 할 때도 많다. 광환 씨는 그런 영희씨가 못마땅할 때도 많지만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아내의 인생을 공유하는 것이다.


    좀처럼 꾸며 말할 줄을 모르는 그녀는 이전에는 작곡을 전공하고 중학교 음악교사를 했지만 이제는 도자를 다루는 도예가가 됐다. ‘세이재’에는 영희 씨가 그동안 활동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세이재에 방문하는 이들에게 정성들여 만든 음식과 밑반찬에 나갈 때면 직접 만든 도자로 빚은 컵과 그릇에 담긴다. 그럴 때면 손님들은 ‘그릇은 어디 것이냐’ 묻고는 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촬영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곳곳에 ‘사진촬영 금지’라고 써놓았다. 어딘가에 자신의 작품사진이 돌아다니는 게 왠지 부끄럽고 싫다. 그녀는 작품도 함부로 판매하지 않는다. 작품에 대해 묻는 이들의 진심을 먼저 본다.

     



    되는 것보다는 안 되는 것이 많은 것 같고, 서비스 정신이 뒤떨어지는 자신들은 ‘서비스 업계의 나쁜 사람’이라고 자칭하는 부부는 손님에게 “또 오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다시 오고 감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인연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물 흐르듯 만들어지는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그들이 도자를 빚듯 아름답고 단단하게 인연을 빚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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