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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 속으로 사라지는 부여 관북리(4)
    러블리타운 2018. 1. 29. 14:20


    사비백제 왕궁터를 찾아가는 첫 발은 부여읍 관북리에서 시작된다.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 없지만 마지막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 




    건축양식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듯 하다. 담장과 대문은 현대식 철문이지만, 안쪽 본채는 늦어도 1970년대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처마 용마루는 함석으로 돼 있다. 함석과 슬레이트는 1980년대 이후에 지붕개량 방식으로 상당히 선호됐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석면 슬레이트 대신 플라스틱 슬레이트가 등장했다. 


    부여장로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살았던 집인 듯 하다. 저런 표식도 족히 20년은 넘어 보인다. 벽면은 거칠게 시멘트를 발라 표현했다. 


    디지털카메라 등장 이후에도 필름은 해상도로 인해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런데, 가정용 스캐너가 보급되고 디지털카메라의 해상도가 높아지면서 필름은 점점 사라졌다. 일회용카메라가 필름시장의 끝을 붙잡고 있었지만, 휴대전화에 카메라가 장착되면서 이 마저도 2000년대 초반에 사라졌다. 




    예전 서 층의 다가구 주택의 기본적인 형식이다. 


    하수도가 흐르는 도랑이다. 물이 흐르지 않고 하수처리를 위해 관을 묻어 골목 담벼락 끝 쪽으로 땅을 파 놓은 도랑에 그대로 흘러가게 해놨다. 지금도 이런 도랑이 남아 있을지는 몰랐다. 


    80년대까지 신축 건물 담벼락 형태다. 면 지역에는 남아 있는 곳도 더러 있다. 기둥을 세우고 콘크리트로 주조된 틀을 조립하는 형태다.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쉽게 넘어가는 등 안전문제 유발과 미관저해로 점차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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