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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황이 많이 날아들었던 은산면 금공리
    러블리타운 2018. 3. 13. 19:24

     

    금강 지천이 시원하게 흐르는 부여 은산면 금공리. 동쪽으로는 큰 지천이, 북쪽과 서쪽, 남쪽으로는 산이 휘돌아 감아내듯 마을을 품고 있다.

     

    마을은 매화낙지의 맥인 가곡리와 한 산을 함께 등지고 쓰는 금공리는 북동쪽부터 서쪽까지 금강안, 안뜸, 오릉거리, 청들, 새터, 안대울, 귓골 마을이 들어서 있다.

     

    안뜸 입구. 고즈넉한 마을이 봄의 파란 하늘과 맞닿아 운치를 더한다.▲ 안뜸 입구. 고즈넉한 마을이 봄의 파란 하늘과 맞닿아 운치를 더한다.

     

    금강사지 발굴조사 현장▲ 금강사지 발굴조사 현장

     

    금강안은 금강이라고 불리는데, 안뜸에서 지천을 따라 올라가면 금강사지(金剛寺址) 발굴터가 나와 이렇게 불리고 있다. 지도에서 길이 끝나기 전 좌측에 이동식 화장실이 보이는데, 그곳이 금강사지다.

     

    사적 제435호인 금강사지는 백제시대 절터다. 문헌에서 이 절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지 않아 이름을 알지 못했었다. 1964년부터 2년 동안 두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금강사라는 글씨가 찍힌 기와 조각이 나와 이곳이 금강사가 있던 곳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강사지 안내 비석과 안내판▲ 금강사지 안내 비석과 안내판

     

     

    지난 2017년 6월부터 이곳은 제3차 발굴조사에 들어갔다. 2019년 6월까지 벌이는 조사에서는 보존과 정비를 위한 자료수집 차원에서 실시 중이다.

     

    금강안 남쪽은 안뜸, 안말이라고도 불리는데 지천이 넓게 흐르고, 맞은편에는 절벽이 펼쳐져 있어 경치가 예사롭지 않은 곳이다.

     

     

    금강사지 앞에 있는 오래된 우물.▲ 금강사지 앞에 있는 오래된 우물.

     

    입구는 콘크리트로 다시 만들었지만 우물 안쪽은 돌로 쌓아서 만든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보니, 아주 오래된 우물임을 알 수 있다.▲ 입구는 콘크리트로 다시 만들었지만 우물 안쪽은 돌로 쌓아서 만든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보니, 아주 오래된 우물임을 알 수 있다.

     

     

    이 마을은 정월 대보름이면 산신제를 지낸다. 작은 산당 안에는, 지금은 정림사지박물관에 보존하고 있는 ‘금공리 산신도(향토유적 제24호)’의 모사가 있다.

     

    오릉거리는 백제시대에 다섯 개의 능(무덤)이 있었다고 해서 오릉거리라고 전해진다. 이 아래쪽은 저자거리라고 하는데, 조선 말기까지 저자가 섰던 곳이라고 한다.

     

    밭을 일구는 노인▲ 밭을 일구는 노인

     

     

     

    안재울 입구에 있는 마을 교회▲ 안재울 입구에 있는 마을 교회

     

    금공리의 가장 서쪽에 있는 귀골은 공동(公洞)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행정기관이 있었고, 마을 뒤편에 매화낙지라 불리는 가곡리를 등지고 있어서인지 귀한 인물이 나올 터라 귀골(귀한 골짜기)이라고 불렸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안재울▲ 안재울

     

    귀골 앞 들판을 마주하고 있는 안재울은 안대울, 안대, 봉대라고도 하는데, 봉(鳳)이 날아들었던 마을이며, 안직이라는 사람이 봉황이 우는 소리를 듣고 정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첩을 아홉이나 거느리고, 소작인들을 괴롭히던 안직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안직은 이 마을이 있기도 이전에 이곳에 봉황 울음소리를 듣고 정착했다. 밭을 하나 하나 일궈 나갔고, 나중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소작을 주며 마을을 이뤘다. 안직은 언제부터인가 집을 한 번 나서면 아흐레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마을 사람들은 안직이 8명의 첩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쑥덕거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안직이 소작인들을 닦달하고 괴롭히다 관청에 붙잡혀 갔는데, 알고 보니 원님이 애지중지 하던 기생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결국 안직은 땅을 소작인들에게 줘야 했고, 자신은 작게 농사를 짓다가 화병으로 세상을 떴다. 이후 봉황이 마을에 많이 날아들었고, 시끄러울 정도로 울어댔다. 이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안직이 봉황이 돼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하며 봉황들을 쫓아냈다. 이 때문에 안직이 봉황이 돼 방탕했던 생활을 뉘우치며 앉아 울었다고 해서 안저울, 안재울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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