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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도 꿈도 진국, 엄민호 한식 요리사
    러블리부여인 2017. 8. 22. 23:35


     한식대첩에 나와 꽤나 유명세를 탄 엄가네 곰탕의 엄민호 셰프는 어린 시절부터 요리의 꿈을 키우던 소년이었다. 어릴 적인지라 그저 막연하게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조리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싶었지만 당시 부여의 어른들은 여자는 부여여고, 남자는 부여고를 가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민호 씨는 부여고등학교로 진학한 3년 내내 요리책만 들여다본 것 같다며 웃었다. 


     3학년 때 담임교사가 민호 씨에게 “자격증을 딸 수 있겠냐”고 물었고, 그는 “시켜만 달라”고 대답했다. 담임교사가 학생부장교사에게 찾아가 민호 씨가 백제초등학교 앞에 생긴 요리 학원을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칼을 잡게 됐다. 


     민호 씨는 요리 생활을 오래한 학원원장에게 체계적으로 요리를 배울 수 있었다. 덕분에 한식, 양식, 일식 자격증도 빠르게 취득했다. 대학 입학 과정에서도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외지에 있는 대학 입학 2학년부터는 실무를 위해 전통 한정식 집에서 일을 배웠다. 1대1 개인 교습으로 회 뜨는 것, 전을 부치는 것 등 하나하나 가르침을 익혔다. 



     그러던 중 민호 씨는 1958년에 시작해 3대째 이어온 곰탕 맛집으로 이미 유명세를 탄 외삼촌과 함께 회사 일을 맡게 됐다. 회사가 커지면서 굴지의 라면회사와 우골스프 개발 사업 제휴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군대에 입대한 후에도 틈틈이 휴가를 나올 때마다 개발 작업을 했지만 제대할 때쯤 라면회사에서 우골스프를 내세운 라면을 출시하면서 계약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맛이나 콜라겐 함량 등 유사성에 관련해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려 했으나 법정은 주관적인 것보단 맛이 아닌 객관화할 수 있는 제조공정으로 판결을 하다 보니 지게 됐다. 이 때문에 외삼촌은 뇌출혈로 2번이나 쓰러지고 민호 씨도 여러 가지 이유로 부여로 내려오게 됐다. 


     부여로 내려와 식당을 준비할 때도 쉽지 않았다. 인테리어와 시설을 다 끝냈는데 갑자기 건물이 경매로 다 넘어가게 되면서 가게 운영은커녕 자비로 철거까지 해야 하는 상황도 닥쳤었다.



    ‘엄가네 곰탕’은 결국 2009년 10월에서야 문을 열게 됐다. 지금 쓰고 있는 가마솥 또한 무쇠가마솥으로 길들이기 위해 끌로 두 달 동안 닦아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싶어 고기를 통으로 받아 골절기로 직접 잘라 골수가 들어 있는지, 냄새 등을 확인했다. 핏물도 12시간 이상 빼내고 본인이 배운 비법으로 종일 곰탕을 끓여냈다. 


     처음 곰탕을 끓일 때만해도 잠도 못자고 이틀 꼬박 끓여낸 곰탕에 잡내가 나면 버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도가 텄다. 



     그렇게 꾸준히 음식을 만들다 보니 어느새 입소문이 퍼지고 인터넷에도 여기저기 올라오더니 방송에도 나가게 됐다. 요즘은 곰탕을 드시러 오는 들이나 전화로 곰탕을 찾으시는 분들이 많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있는데 팩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공장도 짓고 생산할 수 있는 부지도 확보해야하고, 제조 허가도 받아야하는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곰탕집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작업 자체가 원체 힘들다는 것을 알다보니 오히려 처음엔 피했었죠.” 


     주방 밖에서도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이제와 곰탕집을 할 생각은 없었노라 고백하며 차근차근 다음을 준비하는 민호 씨의 땀방울이 곰탕처럼 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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