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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浮山)에서 <남한산성> 이경여 선생의 고민을 마주하다
    러블리타운 2017. 11. 13. 15:02
    부산(浮山)은 부여의 삼산 중 마지막이다. 금성산은 일산이며 오석산은 오산, 부산은 아들 산이다.

    규암면 진변리에 있는 이 부산은 전설에 의하면 떠내려 왔다고 한다.

    부산은 부여와 한반도의 기상을 담고 있는데, 그건 바로  백강(白江) 이경여 선생 때문이다.

    아직도 이경여 선생이 북벌정책을 고심하던 이 산은 백마강, 부소산성, 시가지 등이 잘 어우러져 멋진 경관과 그가 했던 처절한 고민도 함께 느껴진다.

    부산을 올라가는 길은 두 곳이다. 모두 강가에서 출발하는데 강 을 끼고 북쪽과 남쪽으로 나 있다. 등산로도 잘 정비돼 있는 편이다.

    남쪽 안내판을 뒤로하고 산마루에 슬쩍 올라 뒤를 돌아보니 나루터와 백마강이 훤히 보인다.

    나무를 활용해 놓은 계단은 돌산인 이 곳의 형상을 훼손하지 않고 적절히 만들어놨다.

    중턱 쯤에 도달하니 계단은 끊기고 바윗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부소산은 소나무와 안개가 한데 어우러져 운치 있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안내판이다. 왕흥사지는 부산에 있지 않다. 북쪽 입구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막상 겁나보이지만 실제로는 완만한 편이다. 다만 겨울철에는 바위가 얼어서 이쪽으로 올라갈 수가 없다.

    큰 바윗길에 누군가 쌓아놓은 돌탑이 여럿 무더기 보인다.

    세번째 뒤를 돌았을 때 자온대와 백제대교가 나타났다.

    백마강길은 걸어온 곳을 표시한 것이다.

    한 200m쯤 걸어오르면 곧 정상이 보인다.

    정상에 있는 표식이다.

    정상에는 제법 운동기구가 잘 정비돼 있다.

    다시 길을 돌려 대재각을 찾아내려간다.

    길을 내려가다보면 세갈래  길이 나오는데 좌측은 진변리로 가는 북쪽 입구다. 가운데 철재계단이 대재각이다.

    강을 끼고, 줄을 잡고 내려갈 수 있는데 이곳은 오래된 좌불석상과 우물, 정자가 있다.

    산에서 내려온 물이다. 약수터인데, 지금은 먹지 못할 것 같다.

    이 정자는 부산정이다.

    부산정에 있는 석불좌상이다. 꽤 오래된 듯 한데, 목이 부러져 보수됐지만 아직도 덜렁거린다.

    부산은 곳곳이 바위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내려가는 길에 다시 만난 돌탑.

    대재각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부산 각서석 안내판. 이 안내판에 따르면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백강 이경여 선생이 왕으로부터 받은 글을 새긴 바위라고 써 있다. 이 글은 이경여 선생이 북벌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자 효종이 '지통재심 일모도원(至痛在心 日暮途遠:호란의 치욕을 씻지 못하는 비통함이 남아 있는데, 날은 저물고 길은 멀기만 하다)'이라는 뜻을 내려보냈다고 한다.
    원문은 誠以至痛在心 有日暮途遠意이라고 나오지만 우암 송시열 선생이 이를 여덞글자로 줄였고, 숙종 26년(1700년)에 백강의 손자이자 우의정을 지낸 지인 이이명이 송시열의 글을 바위에 새기고 대재각을 세웠다.

    이경여 선생은 광해군 때  낙향해 이 강에서 배를 타고 다니며 북벌에 대한 구상을 했다.
    이경여 선생은 병자호란 때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청나라에 대한  모욕을 와신상담하며  북벌을 꿈꿨다.

    이 집안에서만 대재학이 세 명이나 배출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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