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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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 풍기는 고소한 냄새 ‘루디꼬’러블리부여인 2018. 9. 11. 15:47
부여에 베이커리 카페가 생겼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너무 익숙한 지라 ‘그게 뭐?’라는 시각이지만 부여에서 베이커리 카페는 다소 생소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부여에 베이커리 카페를 만든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여에서 자라온 37세 동갑내기 이계복 씨와 고명선 씨다. 이 둘은 초등학교 때부터 부여에서 학교를 다닌 친구 사이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이후 각자의 길을 가게 됐다. 계복 씨는 대학 때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회사생활을 하는 등의 생활을 했고, 명선 씨는 컨설팅과 제과 쪽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게 됐다. 계복 씨는 군대 생활 중 커피를 접하게 됐다. 당시 운전병이었던 그는 커피를 마실 일이 잦았고 가게마다 커피의 맛이 다른 것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엔 바리스타 교육기관이 없던 시절인지라 인터넷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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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떡 완판녀 ‘연뜰애’ 윤수옥씨러블리부여인 2018. 8. 26. 08:00
윤수옥(46)씨는 ‘연뜰애’ 마케터다. 인터뷰 내내 ‘연뜰애’에 대한 자랑으로 가득하다.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은 결국 실패했다. ‘떡’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수옥씨는 본래 경기도 구리가 고향이다. 양화 족교리가 외가댁이어서 놀러왔다가 남편 이현영(49)씨를 만났다. 그녀는 결혼식을 올렸던 그 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97년 11월에 8일 입포장날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방앗간에 줄을 길게 서있을 정도로 무척 바빴어요. 그런데 손님을 다 맞아가면서 결혼식까지 모두 치렀어요.” 그녀에게 현영씨는 외숙모의 소개로 만난 인연이다. 처음엔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흘 간 시간을 갖자면서 현영씨에게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써놨다. 그런데, 마지막 사흘째 되던 날 밤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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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일왕 부여를 탐내다러블리백제 2018. 8. 24. 21:46
일제강점기. 일본은 신궁을 지을 위치로 한반도 중에서 부여를 택했다. 1939년 7월 31일. 일본 일왕은 라디오를 통해 직접 신궁공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충남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는 비용보다 8만원이 많은 총 24만원이 투입된 대규모 공사였다. 일본 이세이에 있는 신궁과 동일한 규모로 지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하필 왜 ‘부여’에 신궁을 건립하려 했을까? 신궁을 건립하던 위치는 부소산성 내 ‘삼충사’가 서 있는 곳이다. 위치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라는 판단이다. 삼충사 경내에서 도심이 훤히 바라다 보이고, 북서쪽에서 휘돌아 내려온 금강이 부소산을 거쳐 큰 들판을 지나 남쪽으로 흘러내려가고 있는 형상이다. 부여여고 앞 주유소 뒤로 이어진 남령공원 산맥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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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상에는 사랑하는 애인을 향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러블리백제 2018. 8. 15. 21:07
'鄭智遠爲亡妻趙思敬造金像早離三塗' 일제 강점기인 1919년. 부소산성에서 사비루 건립 공사 도중에 8.5cm크기의 작은 불입상이 발견됐다. 이 불상은 참으로 자비롭게 오른손은 치켜들고 있고, 왼손은 내려 모두 손바닥을 내보이고 있었다. @이미지출처 : 백제사비성의부활 오른 손바닥을 올린 것은 '두려워 말라'는 뜻이고, 왼손 바닥을 내려 보인 것은 '소원성취'를 뜻한다. 청동에 수은과 금을 섞어 도금한 이 불상은 또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 불상의 배경이며, 아우라인 광배 뒷면이다. 서동, 선화처럼 이야기는 길지 않지만 그 마음은 아릴 정도로 깊다. '鄭智遠爲亡妻趙思敬造金像早離三塗' (정지원위망처조사경조금상조리삼도) “정지원이 죽은 아내 조사를 위하여 삼가 금상을 만들어 빨리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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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엄마, 티모페라이리나러블리부여인 2018. 7. 27. 23:24
13년 째 부여에 살고 있는 티모페라이리나 씨는 유학 중인 한국인과의 연애 끝에 2004년 말 한국으로 오게 된 러시아인이다. 남편이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부여로 오게 됐는데, 당시엔 부여에 다문화센터가 생기기 전이었다. 때문에 매일같이 혼자 책으로 공부를 하며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러시아와 한국의 차이점은 언어나 문화 등 다양한 것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날씨가 가장 달랐다. 러시아의 여름날씨는 한국의 9월 날씨와도 비슷하고 짧다. 때문에 그녀는 한국에서 겪는 여름이 유독 힘들었단다. 그런 그녀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 명의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 그녀는 누구보다 많은 걱정을 했다. ‘애들의 얼굴이 한국인과 다르면 친구들이 괴롭히지 않을까? 내가 아이들에게 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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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다이의 선물, 초남마키 씨러블리부여인 2018. 7. 26. 14:52
초남마키씨는 일본에서도 미야기현에 속한 센다이에서 살았다. 그녀가 살던 곳은 센다이에서도 교포가 많이 살던 곳이었다. 그렇다보니 일본에서도 한국인과도 교류가 많았는데, 그런 가운데 지인의 소개로 현재 남편을 만나게 됐다. 당시엔 지금처럼 스마트폰을 사용하던 시기가 아니었다. 때문에 이메일과 국제전화 등을 이용했다. 한국말을 전혀 알지 못하던 시기였기에 번역기를 이용해가며 해석을 했고 그래도 어려운 부분은 주변인의 도움을 받으며 1년의 연애를 이어갔다. 외국으로 떠나는 가족들의 걱정을 모르는 체하며, 그녀는 2006년 10월 결혼을 하며 한국에 첫 발을 디뎠다. 공항에 도착한 순간 ‘현실이구나’ 싶었다. “연애할 때 이미 농사를 짓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데이트를 때도 승용차를 타고 만나고하다보니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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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 사비성사람들 김미희 씨의 ‘가치’러블리부여인 2018. 7. 16. 18:36
장암면 귀농 7년차 김미희(63세)씨는 부여군귀농인협의회 초창기 멤버다. 김미희씨는 부여를 중심으로 로컬푸드를 인근 지자체까지 판매대행하는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농사도 여러 차례 지어봤지만 그는 자신의 특기를 활용키로 했다. 그래서 딸과 함께 지역에서 판로를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부여를 택한 특별한 이유라는 건 없어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환경이 너무 좋았고 땅값도 다른 지역보다 싸더라고요. 우리 딸이 화초나 동물을 키우는 걸 좋아해서 시골에 살고 싶었거든요.” 그러나 그의 삶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불만스러운 일들도 마주치고 어려운 일도 겪어야 했다. 지역민들과의 마찰이나 민원은 귀농인들에게 자주 발생됐다고 한다. 때문에 만들게 된 것이 귀농인협의회였다. 지금은 거의 5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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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을 닮은 치유 화가 정봉숙러블리부여인 2018. 7. 10. 16:14
작품을 그릴 때는 항상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우선이라는 정봉숙 화가. 그녀는 자신의 그림으로 잠시나마 보는 이가 고통을 잊고 잠시나마 삶의 따뜻함과 위로를 느낄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다한다. 그녀의 그림은 유독 색채가 맑고 아름다운 여성, 연꽃 등의 꽃이 많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그림을 보면 그렇게도 우는 이들이 많았다. 어떤 이는 그녀의 멱살을 잡고 ‘당신은 이렇게 행복하냐. 나는 너무 힘든데’라고 외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작품을 보자마다‘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며 울기도 했다. 행복만 담고 있는 듯했던 그녀에게도 30년간 작품을 내지 못한 시간이 있었다. 어릴 적, 르누아루의 소녀상을 보고 저 나이가 되면 더 잘 그리겠다는 결심을 하던 그녀를 지지해주던 부모님. 여장부 혹은 태산 같..